생활건강

전통을 계승하는 떡 ‘연안이씨가 각색편

차돌 바위 2006. 11. 3. 22:15

 

 

등록일: 2006년 10월 19일

 


따가운 햇살에도 한잎 두잎 낙엽이 지는 토요일 오후, 전국 유일의 떡 무형문화재인 ‘연안이씨가 각색편’ 기능보유자 이만희(70, 대전무형문화재 제10호)씨를 만나 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전시 중구 유천동 조용한 주택가,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집 한켠 작업장과 마당에 잘 가꾸어진 나무와 꽃 화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그녀의 화사하면서도 정갈한 인품을 느낄 수 있다.
 


단아한 한 폭의 그림 같은 ‘각색편’

떡은 예부터 하늘과 조상에게 올리던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집안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우리말에는 떡과 관련된 속담이 아주 많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등등…. 이렇게 많은 속담은 떡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전통 떡 중에서도 귀한 떡으로 손꼽히는 ‘각색편’은 멥쌀을 주재료로 해 떡고물 없이 각색의 켜를 지어 시루에 찌는 떡이다. ‘각색편’이라는 이름은 흰 색의 ‘백편’, 대추와 꿀을 곤 물을 넣어 갈색을 띠는 ‘꿀 편’, 승검초(당귀)가루와 쑥 잎을 넣어 초록빛이 나는 ‘승검초 편’ 등 3가지 떡 색깔이 잘 어우러져 붙여진 것이다.

‘각색편’은 고려시대 왕실에서 궁중 연회 때 말차(末茶)와 함께 즐겨먹던 귀한 음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이나 반가에서 제사, 의례, 명절 때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전통 비법에 따라 만들었으며, 그 맛과 모양이 뛰어나 다도(茶道)와 결합된 조선왕조의 진찬연(進饌宴)에 반드시 올라가는 찬품이었다.

기능보유자인 이만희 씨의 선조는 고려시대 지다방사(知茶房事;왕의 검식관)였다. 이런 인연으로 연안이씨 집안에는 궁중 음식 중 하나인 각색편 제조 비법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제사나 혼례 등 중요한 집안 행사에 이 떡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자 사람들은 차츰 이 떡을 ‘연안이씨가 각색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안이씨가 각색편’은 조선왕실의 떡 제조방법을 전통방식대로 계승해, 지난 2000년 대전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 받았다. 우리나라 음식분야 무형문화재 중 ‘떡’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이만희 씨의 떡은 백편과 꿀 편이 마치 바둑판처럼 조화를 이루고 떡 위를 붉은 대추와 하얀 잣, 초록의 호박씨로 장식한 매화꽃 문양이 마치 예쁜 수를 놓은 그림과도 같아 먹기 아까울 정도다.
 
정성스런 마음과 손길이 비법

『조선왕조궁중의궤(朝鮮王朝宮中儀軌)』는 각색편 중 ‘백편‘은 멥쌀·찹쌀·석이버섯·잣·밤·대추를,’꿀 편‘은 멥쌀·찹쌀·대추·밤·잣·꿀을,’승검초 편‘은 멥쌀·찹쌀·승검초가루·대추·밤·잣·꿀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안이씨가 각색편’은 전통방식대로 만든다. 먼저 멥쌀을 6시간 이상 물에 불려 소금을 넣고 곱게 빻아 체에 내린 후, 물을 내려 반죽하여 네모 모양을 낸다. 그 다음 시루 밑에 참기름 먹인 창호지를 깔고 그 위에 2cm 두께로 꿀 편을 안치고 대추, 밤, 잣, 석이버섯 등으로 꽃문양을 장식한다. 다시 기름종이를 깔고 같은 방법으로 승검초 편, 백편을 안친다. 그리고 젖은 베 보자기를 덮고 시룻번(시루를 안칠 때에 시루와 솥 사이에서 김이 새지 않도록 바르는 반죽)을 붙여 약 30~40분 정도 쪄낸 뒤 뜨거운 김이 나간 후 썬다.

이만희 씨는 제조과정에 대해 “멥쌀가루에 꿀물을 적당히 뿌리면서 손으로 비벼 수분함량을 조절하는 ‘물 내리기’가 제일 어렵고 중요해요. 이것이 각색편의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맛과 질감을 결정하지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 “예전에는 감자에 물을 들여 꽃을 만들고 미나리로 줄기와 잎사귀를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이씨가 만드는 ‘연안이씨가 각색편’은 전통방식대로 꿀과 대추 등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 달지 않으면서도 대추의 달콤함과 은은한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 멥쌀로 만든 떡 같지 않게 부드럽고, 고슬고슬하면서도 씹으면 찹쌀떡처럼 쫀득쫀득한 차진 맛이 있다. 그럼에도 떡이 손에 묻지 않고 입천장에 달라붙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그녀에게 ‘연안이씨가 각색편’만의 비법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특별한 비법은 없지요. 굳이 꼽으라면 좋은 재료를 고르는 정성, 떡을 빚는 과정마다 정성스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요?”라고 대답한다.

이씨는 떡 재료로 보은 쌀, 연산 대추, 벌곡 꿀, 서울에서 구입한 잣과 밤 등 최상품만을 사용한다. 전통방식은 떡을 켜켜이 쌓고 꽃문양을 내고 자르는 일 등 모든 작업을 전부 손으로 하기에 떡 한 말 만드는데 보통 서너 명이 하루 종일 품을 판다. 작업장 전수자들의 재료 다듬는 손길에서 떡 하나 하나에 들어있는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죠.”

이만희 씨의 친정어머니는 연안이씨가 맏며느리로서 음식솜씨가 무척 좋아 전통음식과 궁중음식 등 여러 음식의 제조비법을 전수 받았다. 그녀 또한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고 손재주도 있어 어깨너머로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음식의 제조법을 익혔다.

그녀는 광산김씨와 혼인해 40여 년간 대전에 살며 ‘연안이씨가 각색편’의 전통을 잇고 있다. 단순히 전통을 잇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랜 경험과 꾸준한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쪄야 백편의 새하얀 색깔을 그대로 내는지, 입천장에 떡이 붙지 않는지를 알아냈다.

또 전통방식의 단점을 보완해 떡 두께를 1cm 정도로 만들어 한 번에 먹기 좋게 만들었다. 그녀는 승검초 편이 특유의 한약냄새와 씁쓸한 맛으로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듯해 요즘은 주로 백편과 꿀 편만으로 모양을 낸다.

이만희 씨는 “요즘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이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어져 웰빙 음식인 떡을 외면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대전에 떡을 파는 전통찻집을 열어 젊은이들이 손쉽게 떡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어요.”라고 계획을 말한다. 전수자로 열심히 배우고 있는 그녀의 며느리가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 주지 않을까?
 
* 절일(節日)에 먹는 떡의 종류

정월 초하루;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가래떡
이월 초하루; 새해 농사를 시작하며 수고해 달라는 뜻으로 노비 송편
삼월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두견화전
사월 초파일; 석가의 탄생을 축하해 느티나무 싹을 넣은 느티떡과 장미화전
오월 단오; 거피팥시루떡으로 단오차사를 지내고 해쑥으로 버무리, 절편, 인절미
유월 유두;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후 고명을 얹어 찐 증편
삼복; 개찰 떡, 밀전병, 주악
칠월 칠석; 흰 쌀로 만든 백설기
팔월 추석; 한가위 햅쌀로 만든 시루떡, 송편
구월 중양절; 국화꽃으로 만든 국화전
시월 상달; 동리 이웃과 나누어 먹는 시루떡
동지; 팥죽에 넣는 찹쌀 경단
섣달 그믐; 은시루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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